[인터뷰] 인천 노동·환경운동 현장의 산증인 김상수 미추홀 정치연구소 소장

  • 등록 2025.09.10 16: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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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딛고 선 버스 정비공이자 노동운동가

 

인천 미추홀구의 작은 사무실에서 만난 김상수(62)씨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지난 세월의 굴곡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3세의 나이에 서울 북아현동의 중국집 배달부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된 노동의 길을 걸어야 했다.


월급조차 받지 못한 첫 직장을 시작으로 인천 도화동 철공소, 장롱공장, 금은방 등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철공소에서는 회전하는 철심에 머리카락이 뽑히는 사고까지 겪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해남여객 버스 정비사로 취업했으나, “기술을 배운다”는 명분 아래 무급으로 일해야 했다.


이후 광주 광전교통으로 옮겨 월 7만원의 급여를 받게 되자, 그는 생활비 대부분을 당시 교육대학에 다니던 형의 학비와 생활비로 보냈다.


자신은 매점 빵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형을 뒷바라지하는 데 3년을 바쳤다.

 

 

무면허 버스 운전으로 교도소에

 

생활고 속에서도 공부의 뜻을 접지 않았던 그는 인천으로 돌아와 정비 일을 이어가며 검정고시에 도전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이 그의 삶을 뒤흔들었다.


버스 시운전 중 오토바이와 충돌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미성년자 정비사들은 면허가 없어도 회사 지시에 따라 운전대를 잡는 일이 흔했다.


그 역시 회사의 묵인 아래 운전을 했지만, 결국 무면허 운전으로 구속돼 학익동 교도소에서 3개월을 미결수로 지내야 했다.


“검사는 이유도 묻지 않고 뺨부터 때리더군요. 항상 해오던 일이었기에 무면허가 그렇게 큰 죄인지도 몰랐습니다.”


그의 회고처럼 억울한 구속이었지만, 오히려 그 시절은 그의 삶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검정고시 합격, 정비사에서 노조위원장으로

 

출소 후 김상수 소장은 다시 버스정비 현장으로 돌아갔다.


밤에는 차고지에서 일하고 낮에는 부평 경기학원에서 공부하는 ‘야경주독(夜耕晝讀)’ 생활을 이어갔다.


결국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잇따라 합격하고 정비사 자격증과 도로교통 안전관리자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24세가 되던 해에는 인천 버스정비연합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초대 위원장에 올랐다.


복수노조 금지조항에 가로막혀 활동에 제약이 있었지만, 그는 정비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앞장섰다.


당시 평균 월급이 20만~30만 원 수준이던 시절, 일부 사업장은 위원장의 사인을 조건으로 월급을 10만원 인상하는 타협을 제안할 만큼 그의 존재감은 컸다.

 

 

학업과 공직생활

 

현장 활동에만 머물지 않았다.


김상수 소장은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에 입학해 과대표를 맡고, ‘사람의터’와 ‘정치연구회’를 설립하며 사회 참여의 폭을 넓혔다.


이어 카센터를 개업하고 방송통신대를 졸업한 뒤 지난 2004년에는 인천 남구청(현 미추홀구청) 기능직 공무원으로 임용돼 다시 공직자의 길을 걸었다.


공무원 노조 초대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목소리를 냈고, 지난 2007년에는 ‘한국마이스터연합회’를 설립해 사무처장을 역임하고 현재 공동대표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환경운동에도 힘써 ‘갯골환경지키미 희망네트워크’를 창립, 사무국장으로서 지역 생태 보전에 앞장서왔다.

 

“좌절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버스정비사에서 공무원, 노동·환경운동가로 이어진 그의 삶은 좌절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무급 노동, 억울한 구속, 생활고에도 꺾이지 않고 배움과 연대를 통해 길을 넓혀온 그는 지금도 인천의 현장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삶은 늘 녹록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길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정치연구소로 주민과 함께하는 미래 정치 구상”

 

“정치는 위로입니다. 주민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정치의 핵심이죠.”


20여 년간 공직에 몸담았던 그는 단순히 개인 정치 활동이 아닌, 주민과 함께 정책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플랫폼으로 연구소를 구상하고 있다.


정치연구소는 특정 정치인의 아이디어를 주입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주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흡수하고 토의하는 저장소 역할을 한다.


김 소장은 “정치연구소는 제 머리가 아니라 주민들의 생각을 담는 공간으로 실제로 주민들이 불편해하는 문제나 필요한 정책을 연구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연구소는 단순한 정책 연구를 넘어 현장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천적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그는 “공직에서 얻은 경험과 현장의 목소리를 토대로, 주민의 삶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정책을 발굴하고 적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생태와 개발을 잇는 정책 연구

 

정치연구소의 중심 과제 중 하나는 자연과 도시 개발의 조화다.


그는 미추홀구 하천과 바닷물을 연계한 생태 친화적 정책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다.


김 소장은 “하천 정비, 바닷물 유입 관리 등은 단순한 환경보호가 아니라 주민 안전과 여가, 삶의 질 향상과 직결된다”며 “정치연구소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연구하고 실현 가능한 정책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자연을 보호하면서도 도시 발전을 이루는 정책을 찾아, 주민들과 함께 논의하고 실천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민과 함께하는 ‘위로의 정치’


정치연구소는 또한 주민 참여형 정치 실험장의 의미를 가진다.


그는 자신을 ‘심부름꾼’에 비유하며, 주민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정책을 제안하며 연구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치연구소를 통해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 목표라는 그는 연구소를 통해 이런 참여형 정치를 구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특히 젊은 층과 다양한 계층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단순히 건물과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사람과 자연을 중심으로 한 정책을 연구하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미래 정치와 유권자에게

 

김상수 소장은 정치연구소를 통한 정치 참여를 미래 유권자들에게 권유하며, 정치의 목적은 결국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정치의 목적이 주민이라면, 의견이 다른 사람과도 토론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연구소는 이런 토론과 합의를 가능하게 하는 장이 될 겁니다. 주민과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는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제 목표”라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김선근 ksg20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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