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주 후 단기 기억 상실 상태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에 대해, 피해자가 느끼는 혼란과 법적 판단 기준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피해자는 본인의 음주 행위와 당시 기억의 부재를 근거로 스스로를 책망하는 경향을 보이나, 현행법상 판단의 쟁점은 명확하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주관적인 사후 판단이 아닌, 사건 당시 객관적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태였는지를 최우선으로 검토한다.
우리 형법은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임을 이용해 성관계가 이루어진 경우 이를 준강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단순히 만취 여부가 아니라, 술•약물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판단 및 대응 능력을 상실했는지에 있다. 비록 피해자가 의식을 완전히 잃지 않았더라도, 외형상 대화가 가능해 보였다는 정황만으로 곧바로 성적 동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재판부는 당시 피해자가 실질적으로 선택과 거절의 의사를 행사할 수 있는 상태였는지를 종합적으로 심리하여 판단한다.
성지파트너스 여울 여성특화센터 윤보현 변호사는 “다만 실무에서 자주 오해하는 지점도 있다. ‘블랙아웃(사후 기억상실)’이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준강간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기억이 일부 남는다고 해서 자동으로 합의가 되는 것도 아니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보는 것은 그때 피해자가 어느 정도로 취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객관 정황이다. CCTV에 부축 장면이 있었는지, 걷는 모습이 비틀거렸는지, 스스로 방향을 선택했는지, 택시 호출•결제 시간대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숙박업소 출입 동선 등과 같은 요소는 동의 가능성을 재구성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결국 기억은 단서일 뿐, 사건을 고정하는 건 상태를 설명하는 기록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처럼 기억 단절 상태에서 발생한 사건은 심리적 대응을 넘어 신속한 증거 확보가 관건이다. CCTV와 통신기록은 유실 가능성이 높고, 약물 범죄가 의심될 경우 성분 검출을 위한 골든타임 확보가 필수적이다. 덧붙여 해바라기센터 등 전문기관은 사건 후 72시간 이내 방문을 권고하며, 약물 피해 의심 시 소변 등 시료를 사전 채취할 것을 안내하고 있다. 수사기관 신고 여부와 별개로 증거 채취는 즉시 진행 가능하므로 신속한 초동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했다.
윤보현 변호사는 “법적 증거 확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사건 직후 피해자의 대응 방식이다. 객관적인 증거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불리한 정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피해자에게 가장 위험한 대응은 혼자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설명을 요구하는 연락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런 대화는 2차 피해로 번지기 쉽고, 사건의 핵심인 ‘상태’와 ‘동선’이 흐려질 수 있다. 반대로 할 일은 구체적입니다. 사건 직후의 몸 상태와 옷, 휴대전화 기록을 가능하면 그대로 두고, 동선(어디서 누구와 있었는지)과 시간대를 메모해 두면 수사에서 퍼즐이 훨씬 빨리 맞춰진다”고 전했다.
이어 “기억이 없다하여 무조건적인 피해로 단정할 수 없고, 반대로 기억이 일부 존재한다 하여 곧바로 합의된 관계로 볼 수도 없다. 핵심은 당시 피해자가 실질적인 동의가 가능한 상태였는지와 가해자가 그 상태를 인지하고 이용했는지 여부"라며, 피해자는 초기에 의료기록과 동선 자료를 빠르게 확보해 2차 피해를 막는 방향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