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자. 이름만으로는 조용한 주부의 이미지가 연상되지만, 지금 그녀는 ‘K-푸드 간편식’ 산업의 선두에 선 창조적 기업가로 불린다. ㈜남도애꽃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그녀의 이력은 전형적인 창업 성공 스토리의 궤를 밟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철학과 집념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외식 산업의 한 분야를 움직이는 주축이 될 수 있었는가.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어떤 결단과 도전이 있었는가. 남도애꽃의 성장 서사는 단순한 기업 성공기를 넘어 ‘한식의 고급화’라는 문화적 사명을 구현해낸 실존적 도전의 기록이다.
인생의 전환점, IMF와 주부의 재탄생
정미자 대표의 사업 여정은 역설적으로 가정의 위기에서 출발했다. IMF 외환위기로 남편이 은행에서 퇴직한 뒤, 정 대표는 생계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다시 묻기 시작했다. 이미 음식에 대한 관심과 내공은 깊었다. 전라도 종갓집에 시집와 1년에 13번씩 제사를 치르면서도 지겨워하지 않고 오히려 매번 요리를 개선하는 창의력을 발휘했다.
요리를 '장사'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녀는 이미 ‘사업가의 사고방식’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단순히 음식을 팔기보다는, 새로운 한식 문화를 창조하고 싶은 욕망이 그녀 안에 존재했던 것이다.
외식업에서 HMR 제조업으로, 진화하는 기업가
2000년, 정 대표는 목동의 백화점에서 문을 닫은 식당을 인수해 첫 한식 레스토랑 ‘초막’을 열었다. 삼계탕 180인분을 팔며 시작한 첫날부터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고, 이후 직접 개발한 육수와 고급스러운 플레이팅으로 초막은 단기간에 ‘맛집’으로 자리잡았다.
외식 브랜드를 잇달아 성공시킨 그녀는 2013년, 고급 한정식 레스토랑 ‘남도애꽃’을 강남에 개점하며 정점의 브랜드를 세웠다. 이곳의 보리굴비는 VIP 고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한 건설사에서 1억 3천만 원어치의 단체 주문이 들어오는 등, 품질로 증명하는 고급 한식의 대표 주자로 우뚝 섰다.
이후 정 대표는 한식을 간편식(HMR)으로 재해석해 제조업으로 확장한다. 이를 위해 기존 외식 브랜드에서 함께한 셰프 군단들과 함께 8년간의 연구개발에 돌입했고, 2016년 마침내 ㈜남도애꽃을 창립했다. 제조업이지만 개발 역량이 뛰어난 기업으로 빠르게 입지를 구축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보리굴비 간편식 제품도 이 과정에서 탄생했다.
남도애꽃, 수백 가지 한식을 상품화하다
현재 남도애꽃은 450여 개의 식약처 품목제조보고 제품을 갖추고 있고, 한정식의 전 과정을 담은 RMR(레스토랑 간편식)을 체계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단순히 한두 가지 인기 메뉴에 그치지 않고, 애피타이저부터 밑반찬까지 수백 가지의 한식 정찬 요리를 제품화한 기업은 국내에 전무후무하다.
온라인 플랫폼 쿠팡, SSG.COM, 현대투홈 등을 통해 광범위한 유통망을 확보하고 있으며, HACCP·이노비즈·FSSC22000·여성친화기업 인증 등 각종 품질 및 기업 인증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컵밥 시리즈(고추장비빔밥, 강된장비빔밥, 잡채)는 비건 인증을 받았고, 잡채 제품은 중동 수출을 위한 할랄 인증까지 완료하며 글로벌 시장 확장에 대비하고 있다.
매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16년 3억 원으로 출발한 매출은 2022년 22억 원, 2023년에는 28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고급 수제 컵밥 브랜드 ‘컵슐랭’은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으며, 미국 코스트코·월마트 입점까지 눈앞에 두고 있다.
단순한 사업가가 아닌, 문화를 만드는 철학자
정미자 대표의 여정을 단순한 ‘경제적 성공’으로 치부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는 그녀가 늘 음식과 문화를 함께 사고했다는 점이다. 그녀가 구상 중인 ‘일로의 부엌’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철학의 실현이다. '일로(一路)'는 그녀의 시아버지이자 시인이었던 김일로의 아호를 딴 이름으로, 음식과 문학, 가정의 정신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구상되고 있다.
‘한식은 곧 삶이고 철학’이라는 말은 단지 미사여구가 아니다. 정미자 대표는 실제로 그 철학을 제품, 레스토랑, 브랜드, 글로벌 전략에 녹여내며 사업을 예술의 영역으로 승화시켰다.
‘기술보다 가치’를 만든 한 여성 CEO의 존재감
㈜남도애꽃의 성공은 단지 ‘맛있는 제품을 만든 여성 CEO’ 이야기로 축소될 수 없다. 정 대표는 단순히 시장의 수요에 응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수요를 “새롭게 창출하고 형성한 공급자”였다. 그녀는 고급 한식을 패키징해 새로운 소비 층에게 접근했으며, 해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한식의 잠재력을 실험하고 입증해냈다.
“한식을 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온기와 철학을 나누고 있다”는 그녀의 말은, 남도애꽃이 단지 식품회사가 아닌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녀는 ‘한식’이라는 단어 안에 고정관념으로 가둬진 틀을 깼고, 문화 자산으로서의 음식을 현대인에게 맞게 가공해낸 장인이다.
정미자 대표는 “한식을 고급화한 사람”이 아니라, “한식에 철학을 부여한 사람”이다. 그녀가 만든 제품에는 음식 이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바로 그것이 남도애꽃이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가장 큰 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