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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 일부 대지 등 빠진 빌딩을 정상가에?… 자회사에 떠넘긴 고가 매입의 진실”

지난 2023년 8월, 대한항공은 한진칼로부터 서울 서소문 KAL빌딩을 2,642억 원에 매입했다. 외관상 보기에는 그룹 내 계열사 간 부동산 이전일 뿐이다. 그러나 이 거래는 자본시장 구조의 왜곡과 편법적 내부거래가 얼마나 공고히 존재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이 빌딩은 지상 16층, 지하 4층 규모의 대형 사옥이다. 본래 대한항공 본사로 쓰이다가 2013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되면서 한진칼 소유로 이전됐다. 이후 약 10년 만에 다시 대한항공이 매입한 셈이다. 그런데 이번 거래에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대한항공이 인수한 것은 건물 전체가 아니었다. 지상 14층 전체와 그에 대응하는 토지 지분 일부는 매입 대상에서 제외됐다. 다시 말해, 대한항공은 전체 소유권을 확보하지 못한 불완전한 자산을 2,642억 원이라는 감정가에 사들인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짚어야 한다. 건물의 일부와 토지권이 빠졌다는 것은 단순히 비율로 ‘1/16이 없다’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시장에서는 이런 불완전 자산에 대해 개발 불가, 재건축 시 협의 필요, 활용 제약 등의 위험 요소를 반영해 통상 20% 이상 할인된 가격을 적용한다. 그러나 이 거래에서는 그런 감가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감정가는 마치 ‘완전한 소유’를 전제로 한 것처럼 설정됐고, 대한항공은 이를 그대로 수용했다.

 

한진칼은 “14층은 계속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해당 층과 대지 지분 없이 나머지를 인수했다. 겉보기에 공동사용일 뿐이지만, 실질적으로 이는 건물 전체의 활용 권리를 제한하는 구조다. 추후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혹은 통매각을 진행할 경우, 한진칼과의 협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시장에서 말하는 ‘제한소유’다. 이런 자산은 분명 가치가 떨어지며, 일반 거래에서는 필히 할인 대상이 된다.

 

그런데도 대한항공은 할인 없이 정상가에 매입했다. 이것은 명백한 재무적 손실이며, 그룹 지배구조상 상위 회사인 한진칼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자회사가 손해를 감수한 구조다. 이런 구조는 대주주 일가 중심의 지주회사 체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이다. 지주회사는 자회사에 자산을 넘기고, 자회사는 손해를 감수한다. 지주회사는 현금을 확보하고, 자회사는 재무구조에 부담을 진다. 회계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익의 사적 전이이자 주주가치 훼손이다.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은 따로 있다. 한진칼은 이번 거래로 자회사인 대한항공으로부터 일시적으로 현금을 확보하는 대신, 장기적인 임대수익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지주회사는 자회사에 부동산을 임대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확보한다. 그게 ‘지주’의 역할 중 하나다. 그런데 이번엔 임대를 중단하고 자산을 통째로 넘겼다. 그것도 일부 층을 제외한 형태로. 당장 대규모 현금 확보가 절실했던 한진칼의 재무 사정을 고려할 때, 이 결정은 임대수익보다 현금 유동성을 우선한 행위로 해석된다.

 

이쯤 되면 이 거래는 ‘정상적인 부동산 이전’이라기보다 지주회사의 유동성 위기 해소를 위한 편법에 가깝다. 그리고 그 비용은 오롯이 자회사 주주, 즉 대한항공 소액주주들이 부담했다. 아무런 설명도, 보호장치도 없이.....

 

형식적으로는 이사회 결의를 거쳤고, 외부 감정평가를 받았으며, 공시도 이뤄졌다. 문제는 그 형식 속에 숨겨진 내용의 불공정성이다. 감정가는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평가 전제 조건이 잘못 설정되면 결과도 왜곡된다. 이번 건에서는 빠진 14층과 대지권을 제외하고 감정평가가 진행됐는지, 실제 거래 조건에 반영됐는지 명확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시장에서는 이를 사실상의 ‘풀 프라이스 거래’로 본다.

 

대한항공은 이 빌딩을 매입하면서 “업무공간 통합”과 “장기적 가치 상승”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해당 층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완전한 통합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한진칼이 남은 층을 계속 점유하고 있기에, 향후 자산가치 상승이 온전히 대한항공에 돌아올지도 불확실하다. 이는 결국 추후 재매입, 혹은 협의 과정에서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불완전한 거래는 자본시장에 매우 잘못된 신호를 준다. 지배구조상 상위 기업이 하위 기업에 비싼 자산을 넘기고, 하위 기업은 이를 감내하는 구조가 반복되면, 시장은 그 그룹 전체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자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자신이 지배주주의 유동성 해결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를 방문해 자본시장 정상화를 선언했다. “주가조작 등 불공정행위에 대해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고, 부당이득은 끝까지 환수하겠다”고 밝혔다. 이 선언은 단지 처벌의 강화가 아니라,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는 정책적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배구조 기반의 편법은 형식적 합법이라는 탈을 쓰고 계속되고 있다. 불법은 단속되고 처벌된다. 하지만 편법은 시스템 안에 숨고, 제도적 허점을 악용한다. 지난번 KAL빌딩 거래는 바로 그런 사례다.

 

합법이 곧 공정은 아니다. 감정평가를 받았다는 이유로, 이사회 결의를 거쳤다는 이유로, 이 거래가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주주이익을 훼손한 편법적 자산이전이며, 자본시장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다.

 

자본시장은 지금 ‘공정’이라는 이름을 둘러싼 갈림길에 서 있다. 단지 법을 지켰는지가 아니라, 그 법이 보호하려는 주주의 권리, 시장의 원칙, 투자자의 신뢰를 지켰는지를 묻는 시대다. 그리고 이 거래는, 그 질문 앞에 너무도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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