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성 KB자산운용 대표는 지난해 1월 취임하며 “KB자산운용을 국내 1위 운용사로 도약시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지만, 불과 1년 만에 시장 점유율 하락과 핵심 인력 이탈, 브랜드 리뉴얼 실패로 경영능력에 경고등이 켜졌다. 특히 그는 지난해 6월, 오랫동안 사용해온 ‘KBSTAR’ 대신 새로운 ETF 브랜드 ‘RISE’를 전격 도입하며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이는 모회사 브랜드인 ‘KB’뿐 아니라, KB금융그룹의 정체성을 상징해온 ‘STAR’ 키워드까지 모두 배제한 결단으로, 조직의 체질 개선을 꾀하려는 의지가 담겼다.
KB자산운용은 2008년 ETF 시장 진출 당시 ‘KSTAR’를 사용했고, 2016년 ‘KBSTAR’로 변경해 그룹 정체성을 강화해왔다. STAR는 국민은행이 지주사로 전환하기 이전부터 ‘세계 금융의 별’을 지향한다는 비전을 담은 상징적인 브랜드였다. 금융사 대부분이 그룹 통합 브랜드를 ETF에 사용하는 상황에서, KB자산운용만이 그룹 색깔을 뺀 ‘RISE’를 선택한 것은 김 대표가 강도 높은 혁신 의지를 보여주려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장 신뢰도를 잃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ETF 브랜드 리뉴얼을 위해 광고선전비만 37억 원으로 전년 대비 260%나 늘렸지만, 투자자 유입 효과는 미미했다.
지난 2022년만 해도 KB자산운용의 ETF 순자산총액은 한투운용보다 3조 원 이상 많았지만, 최근 2년 동안 한투운용은 배재규 대표를 필두로 빠르게 성장하며 KB자산운용을 제쳤다. 그 결과 KB자산운용의 시장 점유율은 오히려 후퇴하며 경쟁사에 역전을 허용했다.
KB자산운용의 지난해 12월 기준 ETF 순자산총액(AUM)은 13조1260억 원(점유율 7.58%)으로 업계 4위로 밀려났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점유율 7.75%로 3위를 유지했지만, 한국투자신탁운용(한투운용)이 공격적인 상품 출시와 마케팅으로 13조1990억 원(점유율 7.62%)을 달성하며 순위를 역전했다. ETF 시장이 2020년 52조 원에서 2024년 173조 원으로 급성장했음에도, KB자산운용은 점유율 방어에 실패하며 ETF 성장의 과실을 온전히 챙기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미국 주식시장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ETF 수익률 경쟁에서 미국 투자가 핵심이 됐지만, KB자산운용은 미국 투자 ETF 부문에서 상위 10위권에 단 한 개의 상품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반면 한투운용은 ‘미국 빅테크’, ‘미국주식베스트셀러’ 상품으로 상위권을 석권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조직개편 역시 김 대표의 리더십에 상처를 남겼다. 그는 취임 직후 ETF솔루션운용본부와 ETF마케팅본부를 ETF사업본부로 통합하고, 한투운용 출신 김찬영 디지털ETF마케팅본부장을 ETF사업본부장으로 영입했다. 하지만 이 인사로 기존 핵심 인력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났다. ETF마케팅본부장 금정섭 상무는 한화자산운용으로, ETF솔루션운용본부장 차동호 상무는 키움증권으로 이직했다. 특히 차 상무를 따르던 운용담당자들까지 동반 퇴사하며 KB자산운용 내 ETF운용 노하우 유출 우려까지 불거졌다. 김 본부장은 ETF 점유율 하락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고, 올해 들어서야 노아름 ETF운용실 실장이 본부장으로 승진 발령되며 조직이 재정비됐지만 시장 불안감은 여전하다.
영업실적도 기대에 못 미쳤다. KB자산운용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883억 원으로 전년 대비 8.17%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삼성, 미래에셋, 신한자산운용, 한투운용 등 주요 운용사 평균 영업이익 성장률(23.5%)에는 크게 못 미쳤다. 김 대표가 브랜드 리뉴얼과 조직개편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음에도 시장 점유율과 상품 경쟁력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ETF 시장 점유율 3위 수성이 김 대표 연임을 위한 최소 조건으로 거론되지만, ETF 시장 경쟁이 한층 치열해진 상황에서 단순한 마케팅이나 광고비만으로는 경쟁사들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지적이 업계에서 잇따르고 있다.
김 대표는 오는 12월 말 임기가 끝난다. 양종희 KB금융그룹 회장 체제에서 발탁된 만큼 연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서는 “김 대표가 지나치게 외형 확대와 리브랜딩에만 집중해 내부 리더십 결속에는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때 “국내 1위 운용사로 도약하겠다”던 김 대표의 포부는 ETF 점유율 하락과 핵심 인력 이탈이라는 그림자로 바뀌었다. KB자산운용이 과연 ETF 시장 경쟁력을 되찾고 김 대표가 ‘1위 도약’의 약속을 실현할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