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일본 가나가와현 야마토시.
JR 야마토역 인근의 ‘모리토이키루 히로바(숲과 함께 살아가는 광장)’에는 이른 오후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무대에선 일본 힙합의 비트와 한국 아이돌의 안무가 번갈아 울려 퍼지고, 관람객들은 한복과 유카타를 번갈아 입은 채 사진을 찍었다. 국경을 잊게 한 축제, 그것이 바로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아 열린 ‘더 마당 페스티벌(THE 마당 페스티벌)’이었다.
■ 국경을 허문 축제, 시민이 주인공이 된 하루
이번 행사는 재일오사카거류민단이 주최하고 세계문화예술진흥회(WAPA)가 공동기획을 맡았다. 오후 12시부터 밤 8시까지 이어진 행사에는 남녀노소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공연과 체험을 즐겼다. ‘마당’이라는 이름 그대로, 누구나 들어와 웃고 떠들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다.
음식 부스에서는 한국식 떡볶이와 일본식 오코노미야끼가 나란히 구워졌고, 아이들은 전통놀이존에서 딱지치기를 배웠다. ‘입장료 무료’라는 조건 덕분에 관광객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자연스레 참여했다.
한 시민은 “서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렇게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게 새롭다”고 말했다.
■ 음악과 패션, 그리고 교류의 리듬
무대는 ‘문화교류’라는 이름에 걸맞게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다. 일본의 대표 힙합 아티스트 AK-69와 GADORO, 밴드 XII After Ours, 스트리트 댄스 팀 ARTiSTREET이 차례로 무대를 꾸몄다. 이어 등장한 한국의 글로벌 아이돌 그룹 nSSign은 현장의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한일 아티스트가 같은 무대에서 호흡을 맞추는 장면은, 말보다 더 강렬한 문화외교의 순간이었다.
무대의 정점을 찍은 건 한복 패션쇼였다.
총감독을 맡은 김춘엽 WAPA 이사장은 전통의 곡선과 현대의 감각을 절묘하게 결합해 한복을 ‘예술 언어’로 승화시켰다. 그의 지휘 아래 이선영 사무총장과 이은숙 총괄본부장이 연출을 맡았고, ‘휘아패션’과 ‘백금자우리옷’이 디자인을 맡아 파리 패션위크에서 호평받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34명의 한국 모델이 런웨이를 걸었고, 그들의 발걸음에는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국가 간 우정’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 “문화는 외교보다 오래 남는다” — 김춘엽 이사장의 철학
행사 총감독 김춘엽 이사장은 오랜 시간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헌신해왔다.그는 경주 APEC 문화행사, 전주 올림픽 문화페스티벌, 체코 프라하 세계생활체육연맹 초청행사 등 굵직한 국제무대의 기획자로 이름을 알렸다.
김 이사장은 이번 축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문화는 국경을 넘는 가장 따뜻한 언어입니다.
정치가 냉각될 때에도,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녹입니다.”
그의 말처럼, 이번 한복패션쇼는 단순한 런웨이가 아니라 ‘문화외교의 현장’이었다. 그는 다문화가정 전통혼례 무료진행, 해외 생리대·한복 기부 등 문화와 복지를 결합한 활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WAPA의 움직임은 단순한 예술 단체를 넘어 ‘문화로 세계를 잇는 민간외교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 정치보다 앞선 민간의 힘
이번 ‘더 마당 페스티벌’의 의미는 단순한 축제를 넘어선다. 최근 한일 관계가 정치적으로 미묘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이날 야마토의 마당에서는 ‘정치보다 먼저 손을 내민 사람들’의 힘이 빛났다.
한 일본 관람객은 “한국의 한복과 음악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처음 알았다”며 “정치 뉴스보다 이 무대가 훨씬 더 설득력 있다”고 말했다. 한국 참가자들 또한 “문화는 싸움이 아니라 이해로 이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 한일 60년, 다음 100년을 향해
행사 관계자들은 이번 축제를 계기로 한일 청소년 예술캠프, 문화인 교환 프로젝트, 양국 전통공예 협업전 등 지속 가능한 교류 프로그램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날의 ‘마당’이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양국 시민이 주도하는 새로운 문화외교의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야마토의 밤공기를 물들인 음악과 한복의 물결.
그 속에서 한일 양국은 정치 대신 문화로,
경계 대신 웃음으로 서로를 이해했다.
수교 60년의 세월이 ‘축제’로 피어난 순간 —
‘더 마당 페스티벌’은 그렇게, 국경을 넘어선 하나의 마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