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오는 7월부터 ‘책무구조도’ 도입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의 이사회 의장직 유지가 보험업계 내 지배구조 개선 흐름과 맞물려 주목 받고 있다. 정 회장은 20년 넘게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을 맡아온 상장 보험사 유일의 오너 의장이다. 외형상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있으나, 실질적 권한과 구조를 들여다보면 당국이 추진하는 개혁 방향과 정면으로 충돌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몽윤 회장은 2004년부터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직을 유지해 왔고, 현재도 등기임원(사내이사)으로 공식 등재돼 있다. 현대해상 등기임원 명부에 따르면 정 회장은 여전히 경영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다. 대표이사직은 전문경영인 이석현 부사장이 맡고 있지만, 그룹의 최대 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인 정 회장이 경영 전반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지배구조 독립성과 내부통제를 강조하는 현 정부의 방향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이사회가 대표이사를 감독해야 할 기구인 만큼,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대해상은 오너가 출신 이사가 의장직을 계속 유지하면서 사실상 이사회가 사외감시 기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이사회 활동에서도 정 회장은 낮은 출석률로 지적을 받아 왔다. 2019년에는 25%, 2020년에는 11.1%, 2021년에는 44.4%에 그쳤다. 최근 몇 년간 80%대를 회복하긴 했으나, 업계 주요 손보사 이사회 의장의 출석률이 대부분 100%에 가까운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정몽윤 회장은 2024년 한 해 동안 급여 9억3700만 원, 상여 17억6500만 원, 기타 근로소득 3900만 원 등 총 27억4100만 원을 수령하며 사실상 ‘연봉킹’에 올랐다. 이는 전문경영인 체제 하에 있는 다른 대형 보험사들과 비교해도 두드러지는 수치다. 같은 해 삼성화재 이문화 사장이 수령한 보수는 16억900만 원 수준으로, 현대해상의 연간 순이익이 삼성화재보다 절반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 회장의 보수는 업계 평균을 크게 웃도는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현행법상 이사회 의장을 오너가 인사가 맡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며,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공시 의무를 이행하면 예외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예외가 실질적 지배구조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느냐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특히 정 회장의 낮은 출석률, 고액 보수, 장기 겸직 구조는 ‘무임승차’, ‘유령 의장’이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더구나 현대해상이 추진하는 내부통제 강화 방안이나 이사회 개편 움직임도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아 당국의 압박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재명 정부는 ‘지배구조 2.0’을 핵심 국정과제로 삼고 상법 및 자본시장법 전면 개정을 추진 중이다. 이 가운데 이사의 충실의무 명문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집중투표제 강화 등은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장치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사회 의장직의 사외이사 중심 전환은 경영 투명성 제고를 위한 상징적 조치로, 정 회장 체제와 같은 구조에 대해 실질적 개선을 요구하는 신호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국이 이번 개혁에서 외형적 분리뿐 아니라 실질적 권한 구조와 내부통제 기능까지 들여다볼 경우, 정몽윤 회장의 체제는 개편 압박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회사 경영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오너 중심 체제의 지속 가능성은 더 이상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배구조 2.0' 시대에 정몽윤 회장의 오랜 리더십이 과연 어떤 개혁을 이끌어낼지, 금융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