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설계(Design House) 기업 세미파이브가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높은 공모가 산정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매출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영업손실이 오히려 확대되는 가운데 비교기업 선정 방식까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고평가 상장’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제출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세미파이브의 2024년 매출액은 1,118억 원으로 전년 대비 57% 증가했다. 2022년 720억 원 수준이었던 매출은 3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가며 외형이 꾸준히 확대됐다.
그러나 같은 해 영업손실은 229억 원, 당기순손실은 2,909억 원으로 적자 기조는 지속됐다. 순손실 폭이 크게 확대된 것은 전환우선주부채 평가손실 등 금융비용이 대거 반영된 영향이다. 다만 영업손실 규모는 2023년 339억 원에서 111억 원 줄며 손실 폭이 일시적으로 완화됐다.
2025년 상반기 실적은 매출 481억 원, 영업손실 281억 원, 순손실 281억 원으로 집계됐다. 불과 반년 만에 전년 연간 손실 규모를 넘어선 것으로, 매출 확대에도 불구하고 적자 구조가 심화된 셈이다. 인건비와 연구개발비, 주식보상비용 등 비용 부담이 이어지면서 흑자 전환에는 실패했다.
세미파이브는 이번 상장을 통해 공모가 밴드를 2만~2만4,000원으로 제시했다. 상단 기준으로 상장 후 예상 시가총액은 약 8,092억 원에 달한다. 공모 주식 수는 540만 주, 공모금액은 1,134억~1,296억 원 규모로, 삼성증권과 UBS증권이 공동주관을 맡았다. 상장 목표 시점은 연내로, 수요예측을 거쳐 청약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세미파이브는 공모가 산정 과정에서 대만 알칩(Alchip), GUC(Global Unichip), Faraday Technology 외에도 미국 반도체 설계자동화(EDA) 대기업 시놉시스(Synopsys)와 램버스(Rambus)를 비교기업으로 포함했다. 이 과정에서 PER 45.36배가 적용됐으며, 최근 대형 합병 거래를 마친 시놉시스를 비교 대상으로 포함해 밸류에이션이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놉시스는 2024년 1월 시뮬레이션 및 분석 소프트웨어 기업 안시스(Ansys)와 합병 계약을 체결했고, 2025년 7월 거래가 완료됐다. 총 거래 규모는 약 350억달러에 달했으며, 안시스 주주들은 보유 주식 1주당 197달러의 현금과 0.345주의 시놉시스 보통주를 지급받았다.
기업가치에 중대한 변동을 초래하는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세미파이브는 이를 가치평가 비교대상에 그대로 포함시켰고, 관련 사실을 별도로 공시하지 않았다. 반면 상장 절차를 진행 중인 노타는 시놉시스를 비교기업군에서 제외했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된다.
시놉시스의 시가총액은 1,100조 원대로, 세미파이브의 예상 시총(8,000억 원)의 1,000배 이상이다. 규모나 사업 구조가 전혀 다른 글로벌 대형사를 비교 대상으로 삼은 점에 대해 “밸류에이션을 부풀리기 위한 무리한 비교”라는 비판이 나온다.
세미파이브는 반도체 맞춤형 설계(ASIC)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국내 대표 디자인하우스로, AI와 고성능컴퓨팅(HPC) 칩 수요 확대에 힘입어 매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영업손실이 지속되고 있고 흑자 전환 시점이 명확하지 않아 성장성과 수익성 간의 괴리가 지적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이익 구조가 자리 잡지 않았다”며 “초대형 글로벌 기업을 비교 대상으로 삼은 점은 밸류에이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세미파이브는 증권신고서에서 2026년 흑자전환을 전제로 한 손익추정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내부 추정에 따르면 2025년 매출은 1,397억 원, 2026년 매출은 2,086억 원으로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각각 △338억 원에서 +102억 원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됐다. 다만 이러한 수치는 자체 가정에 기반한 예상치일 뿐, 실제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결국 세미파이브는 매출 성장과 기술 경쟁력 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2025년 상반기 기준으로 이미 손실이 전년치를 넘어선 상황에서 기업가치 8천억 원 이상을 인정받은 점은 시장의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상장 이후 주가가 공모가 수준을 방어할 수 있을지, 그리고 회사가 약속한 2026년 흑자전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가 이번 IPO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