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전설비 정비를 주력으로 하는 한전KPS에서 산업재해 사고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사망사고가 반복되고 있어 안전 관리 시스템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현장의 죽음은 멈추지 않는데, 공공기관의 책임과 법의 실효성은 실종된 모습이다.
◆ 산업재해 ‘최악’…5년간 5명 사망, 지난해 재해자 역대 최대
한전KPS는 최근 5년간 산업재해로 5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2020년 9명, 2021년 12명, 2022년 12명, 2023년 19명, 2024년 24명으로 재해자 수가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에는 3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면서 역대 최다 사망자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 6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한전KPS의 재하청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가 혼자 작업하다 기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8년 고 김용균 씨 사망사고와 유사한 ‘위험의 외주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충격이 컸다.
◆ 중대재해처벌법, 공공기관엔 ‘무용지물’…“법치 위기” 지적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한전KPS에서는 오히려 산재가 늘었다. 지난해만 24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했으며, 사망사고도 3건이나 이어졌다. 고용노동부의 시정지시는 최근 5년간 단 2건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사망사고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이었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이 법을 무시하면 법치의 위기”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한전KPS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는 “고위험 현장 안전관리 강화와 경영책임자 엄중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사장 공백 1년, 안전관리 시스템 ‘마비’…경영 리더십 부재가 만든 현장 혼란
한전KPS는 지난해 6월 김홍연 사장 임기 만료 이후 1년 넘게 후임 인선이 지연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사망사고가 2건이나 발생했다. 공공기관의 리더십 부재는 사업 결정 지연, 조직 기강 해이, 현장 안전관리의 사각지대 등으로 번지고 있다. 실제로 사고 발생 이후에도 작업 재개 명령이 내려지는 등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습이 반복됐다.
◆위험의 외주화와 다단계 하청…비정규직, 죽음의 사각지대
한전KPS의 발전소 정비업무는 대부분 재하청 구조로 운영된다. 원청(서부발전)→1차 하청(한전KPS)→2차 하청(한국파워O&M) 등 다단계 하청이 일반적이다. 이 과정에서 안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방호장치 없이 혼자 작업하는 등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이런 구조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근본적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공공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한전KPS의 반복되는 산재와 사망사고는 단순한 현장 관리 미흡을 넘어, 공공기관 책임 회피와 법 집행의 실효성 부재라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공공기관부터 경영책임 강화와 안전관리 시스템 혁신에 나서야 한다. 리더십 공백이 만든 ‘안전의 구멍’이 더 이상 노동자의 죽음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정부와 한전KPS 모두, 더 이상 땜질식 대책이 아닌 근본적 변화로 현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