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의 자금조달 사례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최근 판단 기준에 비춰 위법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공정위는 이달 CJ그룹이 계열사에 대한 자본확충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무상 지원’에 해당하는 구조를 활용했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같은 구조를 활용한 기업이 다수였던 만큼, 한화그룹 역시 동일한 잣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화건설은 지난 2014년 6월, 특수목적회사(SPC) 레콘㈜을 통해 총 4000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행했다. KDB산업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 주요 금융기관들이 투자에 참여했고, RCPS는 회계상 전액 자본으로 처리됐다. 그러나 이 RCPS 구조는 모회사인 ㈜한화가 실질적으로 투자원금과 수익을 보전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어 사실상 계열사에 대한 신용보강 또는 지급보증 효과를 낳았다는 분석이 제기돼 왔다.
㈜한화는 RCPS 투자자들과의 계약을 통해 ▲향후 3년간 원금 손실 시 차액 보전 ▲한화생명 주식 5.9%(5124만 주)를 담보 제공 ▲RCPS 콜옵션 설정 등을 제공했다. 투자자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전환, 조기상환, 또는 ㈜한화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회수할 수 있는 구조였다.
공정위는 이번 CJ그룹 제재에서, 지주사인 CJ와 CJ CGV가 계열사(CJ건설, 시뮬라인)의 자본조달 과정에서 신용보강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 ‘부당지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투자자가 계열사의 영구전환사채에 투자한 뒤, 동시에 모회사와 수익스와프(TRS) 계약을 체결해 수익과 위험을 넘긴 구조에 대해 “결과적으로는 모회사가 계열사의 자금조달을 대신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한화의 RCPS 역시 계열사 부당지원 소지가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공정위가 지목한 핵심은 ‘직접 보증은 없지만 실질적으로 수익 및 손실을 모회사가 보전하는 구조’로, 이는 형식보다 실질을 따지는 최근 공정위 판단 방향과 일치한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국내 대기업의 TRS 거래 규모는 2조8185억원에 달한다. CJ 사례와 유사한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한 기업은 한화그룹 외에도 KT, 이랜드월드, 신세계, 대한항공, 두산중공업, 효성, LS 등 10곳이 넘는다. 이들 다수는 계열사 발행 전환사채나 RCPS를 기초자산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으며, 일부는 2015년 전후에 진행돼 공정위의 처분시효 소멸 기한이 임박한 상태다.
일각에선 이번 제재가 특정 기업만을 겨냥한 '표적 단속'이라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공정위가 다른 대기업 사례에 대해서도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공정위의 기업집단 내부 거래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는 가운데, 한화그룹의 과거 거래에도 제재의 칼날이 향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