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장품사 에이블씨엔씨(브랜드 ‘미샤’)가 미국에서 전직 고위 임원에게 피소되면서, 단순한 고용 분쟁을 넘어 대미(對美) 수출 과정의 성분·규제 적합성 기재가 허위였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소송을 제기한 장세훈 전 미국법인 공동대표는 회사가 자외선차단제를 수출하면서 실제 성분과 다른 내용이 담긴 통관 문서를 제출해 미 식품의약국(FDA) 규제를 피해 왔다고 주장한다.

장 전 대표가 23년 5월 12일 미국 뉴저지 연방지방법원에 제출한 자료와 주장에 따르면, 그는 2021년 9월 2일부터 2022년 9월 2일까지 포괄 원산지 증명서에 서명했다. 해당 문서에는 미샤·어퓨 등 6만1,883개 화장품 품목이 나열됐고, 모두 원산지 ‘KR(대한민국)’로 표기됐다.
품목은 HS Code 3304.99·3304.20·3304.10 등 화장품 관련 코드로 분류됐다. 포괄 원산지 증명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특혜관세를 적용받기 위한 필수 서류로, 표기 내용이 사실과 다르면 한국 관세법·FTA 규정·미국 세관법 위반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장 전 대표 측은 원산지 표기 그 자체보다, 이 증명서와 함께 제출되는 상업 송장 등 통관 서류에 적힌 “성분·규제 적합성 정보”가 사실과 다르면 문서 전체가 위법 소지가 생긴다고 지적한다.
논란의 초점은 상업 송장의 기재 방식이다. 장 전 대표는 회사 보관 송장에는 비GRASE(일반적으로 안전·유효하다고 인정되지 않은) 유효성분이 포함된 OTC(일반의약품) 선스크린 출하 사실이 기록돼 있었지만, 동일 출하분에 대해 미국 세관에 제출된 송장에는 GRASE(안전·유효성 인정) 제품으로 바꿔 기재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2021년 1월 통관 브로커가 ‘비허가 성분’ 선적을 거부한 전례가 있었고, 2022년 4월 내부감사에서도 미국 제출 송장과 회사 보관 송장 간 불일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정황을 당시 최고경영자에게 보고했으나 시정 조치 없이 관행이 이어졌다는 것이 원고 측 설명이다.
해외 수출 화장품의 자외선차단제는 미국에서 화장품이면서 OTC 의약품 체계의 적용을 받는다. FDA가 ‘GRASE’로 인정하지 않은 활성 성분을 사용한 OTC 선스크린은 원칙적으로 신약허가 절차(NDA)를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연방법(FDCA)상 ‘허위표시’ 제품으로 분류돼 유통이 금지된다. 이때 통관 단계에서 제출한 문서에 성분이나 제품 성격을 실제와 달리 표기했다면, 이는 단순 행정 오류를 넘어 규제 회피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미 세관법은 허위·부정확 신고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 민사 벌과금, 수입거부, 압류·폐기, 경우에 따라 수입경보(Import Alert) 등 제재가 뒤따를 수 있다. 한미 FTA 특혜 적용과 관련해서도, 원산지 증명서 ‘패키지’(증명서·상업 송장·패킹리스트 등)에 포함된 물품 설명이나 규제 관련 정보가 사실과 다르면 사후 심사에서 특혜 배제·추징, 허위 발급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장 전 대표 소송에는 인사·보상 갈등도 포함돼 있다. 그는 2020년 계약 체결 당시 연봉과 인센티브에 더해 대주주 지분 매각 시 일정 비율을 지급하는 ‘Exit 보너스’ 약속이 있었고, 2022년 재계약에서도 조건이 유지·강화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23년 초 회사에 보너스 논의를 제안하자 곧바로 해고 통보를 받았고, 해고 사유도 명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계약 위반, 신의성실 위반, 보복적 조치 등을 문제 삼는 한편, 자신이 규제 위반 정황을 내부 보고한 뒤 불이익을 받았다며 뉴저지 내부고발자 보호법(CEPA) 위반도 함께 제기했다. 법원은 절차 진행 과정에서 일부 청구를 기각했지만, 신의성실 및 CEPA 관련 쟁점은 여전히 사건의 뼈대로 남아 있다. 즉 규제 위반이 본안에서 입증되지 않더라도, 내부 제보 이후의 인사 조치가 보복에 해당하는지 여부만으로 회사 책임이 판단될 수 있는 구조다.
한편, 에이블씨엔씨 관계자는 “해당 사안은 법원의 절차와 판결에 따라 처리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