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건설이 5%를 넘는 고금리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전량 미매각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6월 23일 진행된 수요예측에서 1,100억 원 규모의 회사채에 대해 기관투자자들의 매수 주문이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A급 신용등급을 보유한 대기업 계열사가 자본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사례는 드물다. 이는 최근 하향 조정된 신용등급과 함께 시장이 롯데건설의 재무구조와 사업 리스크를 더 이상 긍정적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실제 롯데건설의 신용등급은 최근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등 주요 신용평가사 3곳으로부터 일제히 하향 조정됐다. 무보증사채 기준으로 A+에서 A로 한 단계 떨어졌다. 신용평가사들은 등급 하향의 배경으로 지방 사업장의 미분양 지속, 분양경기 침체, 과중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를 꼽았다. 특히 미착공 PF 보증 규모는 약 2조 원에 달하고, 광주·의정부 등 일부 지방 사업장의 분양률은 20~40% 수준에 그치고 있다. 분양 경기 부진이 계속될 경우, 선분양을 전제로 한 자금 회수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셈이다.
실제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2024년 2.2%에서 2025년 1분기 0.2%까지 급락했다. 같은 기간 순차입금은 1조7000억 원에 달하며, 부채비율은 다시 200%를 넘어섰다. 이는 단기적인 유동성 문제를 넘어 구조적인 수익성 저하와 재무건전성 약화로 연결될 수 있는 수치다.
물론 롯데건설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유동성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에 노력해왔다. 2022년 말 기준 265%였던 부채비율은 2023년 말 196%로, 같은 기간 차입금 의존도는 40%에서 24%로 낮아졌다. PF 보증 규모 역시 2022년 말 6조8000억 원에서 2025년 1분기 기준 3조6000억 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였다. 하지만 여전히 3조 원대 중반의 PF 우발채무가 존재하고, 일부 사업장의 분양률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은 개선 조치보다 남아 있는 구조적 리스크에 더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롯데건설은 오는 6월 30일 공모채를 예정대로 발행할 예정이다. KB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7개 증권사가 전량 인수를 맡았다. 겉으로 보면 자금 조달은 이뤄진 셈이지만, 실제로는 수요예측에서 수요가 전무한 상태에서의 인수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해당 물량이 소화되지 않을 경우 인수 증권사의 보유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그룹 내 다른 계열사가 유동성 지원이나 물량 인수를 간접적으로 떠안게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에서는 이번 신용등급 하향이 이미 예견된 조치였고, 회사 측의 유동성 대응 여력이 아직 남아 있는 만큼 자금 조달 측면의 단기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롯데건설 측 역시 중장기적으로는 분양시장 회복과 주요 사업장 준공 등을 통해 수익성 개선이 기대된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부채비율을 150% 이하로 낮추고, PF 우발채무도 자기자본 수준 이하로 관리하겠다는 재무건전성 강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국내 주택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공사비 회수 지연과 재고자산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결국 PF 리스크 관리와 분양시장 회복 여부가 롯데건설의 향후 신용도와 자금 조달 환경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전망이다. 시장은 금리보다 구조를 보고 있으며, 브랜드나 그룹 네임밸류만으로는 더 이상 투자자의 신뢰를 끌어내기 어려운 상황임이 이번 사례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