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볼티모어 항에서 발생한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 붕괴 사고를 둘러싸고, 선박 건조사인 HD현대중공업과 선주·운영사 간 책임 공방이 본격화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선박 전문 매체 지캡틴(gCaptain)에 따르면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사고의 출발점을 선박 전기계통 결함으로 지목하자, HD현대중공업은 “치명적인 원인은 인도 이후 운영사의 불법 개조와 운용 실패”라며 정면 반박에 나섰다.
사고는 2024년 3월 26일 발생했다. 컨테이너선 달리(Dali)호가 출항 과정에서 조향과 추진력을 상실한 채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 교각을 들이받았고, 교량은 붕괴됐다. 이 사고로 도로 작업자 6명이 숨졌고, 교량 재건 비용만 약 52억 달러(약 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조사 결과에 따라 선박 건조사인 HD현대중공업(HHI)이 대규모 민·형사 소송은 물론 보험사와의 구상권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공개된 NTSB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고의 직접적 계기는 선박 전기 시스템 내 ‘느슨한 전선’이었다. 조사단은 배선 라벨 밴딩(wire-label banding) 설치 불량으로 인해 신호선이 단자대에 완전히 체결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차단기가 예기치 않게 작동하면서 두 차례의 블랙아웃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달리호는 교량 인근에서 추진력과 조향 능력을 동시에 상실했다.
NTSB는 특히 이 전기적 문제를 사고의 ‘개연적 원인(probable cause)’으로 명시하며, HD현대중공업에 대해 전기 배선 관련 표준운영절차(SOP)를 보완할 것을 권고했다. 사고의 출발점을 사실상 선박 제작·설계 단계의 문제로 본 판단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HD현대중공업은 즉각 반발했다. 회사 측은 성명을 통해 달리호가 인도 당시부터 다중 중복 안전 시스템과 자동 재시동 기능을 갖춘 선박이었다고 강조했다. 달리호에는 4기의 독립 디젤 발전기와 2기의 독립 변압기, 자동 연료 공급 펌프가 장착돼 있었고, 이는 모두 선급 규칙이 요구하는 필수 사양이라는 설명이다.
HD현대중공업이 지적하는 핵심은 ‘인도 이후 개조’다. 회사 측에 따르면 선주와 운영사는 자동 연료 공급 펌프를 제거하고, 본래 세척용으로만 사용되는 전기식 플러싱 펌프를 연료 공급용으로 전용했다. 플러싱 펌프는 단일 지점 장치로 자동 재시동 기능이 없고, 안전 중복 구조를 갖추지 않은 설비다. HD현대중공업은 이를 두고 “연료 시스템의 중복성과 자동화를 스스로 훼손한 명백한 선급 규칙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사고 당일 달리호는 실제로 두 차례 정전을 겪었다. 첫 번째 정전은 변압기 단자대에서 전선이 이탈하며 발생했다. 이후 수동으로 예비 변압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연료를 공급하던 플러싱 펌프가 재가동되지 않았고, 발전기 연료 공급이 중단되면서 두 번째 정전이 발생했다. HD현대중공업은 “선박이 원래 설계대로 운용됐다면 전력은 수 초 내 복구됐을 것이며, 두 번째 정전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NTSB 역시 운영상의 문제를 일부 인정했다는 점이다. NTSB는 조사 보고서에서 플러싱 펌프를 디젤 발전기의 서비스 펌프로 사용한 것은 부적절한 운용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정전 이후 디젤 발전기 3·4번에 필요한 연료 압력이 자동으로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두 번째 블랙아웃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NTSB는 달리호 운영사인 시너지 마린(Synergy Marine)의 운영 감독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만 NTSB는 동시에 “지난 10년간의 정기 점검 과정에서 이 느슨한 전선이 발견됐어야 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선 결함이 단순한 운용 실수 차원을 넘어, 장기간 방치된 구조적 문제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달리호 사고를 둘러싼 법적 책임의 최종 귀속은 결국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이지만, 그 과정 자체가 HD현대중공업 에 상당한 부담과 파장을 안길 가능성은 커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