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인협회의 전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과거 ‘재계의 본산’으로 불릴 정도로 큰 역할을 해왔다. IMF 땐 재계를 대표하며 ‘빅딜(대규모 사업 교환)’ 등 산업계 구조조정까지 좌지우지 할 정도였다.
이처럼 큰 역할을 해오던 중에 2016년 말 이른바 최순실 국정 논란 사태로 삼성·SK·현대자동차·LG 4대 그룹이 전경련을 탈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2023년 이들 4대그룹이 여러 우여곡절 끝에 전경련에 복귀했지만, 그 동안 위상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삼성(이병철)·현대(정주영)·LG(구자경)·SK(최종현) 등 4대 그룹 총수들이 맡아 오던 회장 직의 위상도 점점 낮아졌다. 경방(김각중)·동아제약(강신호)·효성(조석래)·GS(허창수) 등을 거쳐 현재는 중견기업 풍산의 오너 류진 회장이 맡을 정도이다. 이즈음 명칭도 전경련에서 한경협으로 바뀌는 과정이 있었다.
이재명 정부 들어 한경협이 재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는 커녕 정부·여당의 ‘스피커’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조의 목소리까지 나오는 형국이 되었다.
새 정부 출범 8개월 만에 여당 주도로 상법 개정이 잇따라 세 차례나 일사천리로 처리됐지만, 한경협은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했다. 도리어 주주 가치 제고와 기업 투명성 강화라는 취지에는 공감한다는 반응을 내놓는 상황이다. 경영진이 줄소송을 당하고 해외 투기 세력에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는 와중에 별다른 대응을 못한 것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상법 3차 개정안이 통과된 지난 25일에도 한경협은 "국회 본회의 통과를 존중한다”는 취지의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이 같은 한경협을 대신해 재계 맏형 역할을 하고자 하는 대한상공회의소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달 초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 정책을 지적하는 대한상의의 보도자료 오류를 문제 삼아 가짜 뉴스라고 말한 이후 대한상의는 대외 활동을 사실상 중단한 상황이다. 더구나 정부의 즉각적인 감사 착수 등 강경 모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은 이달초부터 미국에 머물면서 정부의 눈치를 살피는 중이라고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SK그룹 관계자는 “이 대통령 심기를 건드린 가짜뉴스 이슈가 잠잠해 질 때까지 조용히 있다가 귀국 날짜를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대한상의 최태원 회장은 미국 현지에서 여러 일정을 소화 중이다. 지난 5일 전 세계 인공지능 반도체 패권을 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최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치킨집에서 치맥파티를 했다. 이어 20일 최 회장은 워싱턴DC에서 최종현학술원 주최로 열린 트랜스퍼시픽다이얼로그(TPD)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때 최 회장은 왼손에 기브스를 한채 나타나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26일 “대통령과 여당이 일방통행식의 상법 개정에 속도를 높이는 가운데 한경협과 대한상의는 단 한마디의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그 수장직을 맡고 있는 류 회장과 최 회장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